백승학 2006년 1월에 개봉한 영화 '사랑을 놓치다'는 통속하거나 섬세하다. 젊은 남녀의 줄다리기 같고, 흔해 터진 사랑의 역학관계를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우선 통속하다. 그러나 통속하게만 보이는 사랑이 어찌하여 다분히 공허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인생을 견디게 하는지에 대하여 보여주려 할 때,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며 섬세하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어긋남이...
백승학 세상을 불지르겠다며 나갔던 혁명가가 한 갑, 혹은 한 개비의 성냥이 없어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꼭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뀌지 않고서는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인생을 변혁시키고 새롭게 하는데 필요한 한 갑, 혹은 한 개비의 성냥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
백승학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이삿짐 속에서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편지 한 장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물건을 따로 보관해 둔 작은 상자가 이사 중에 부서지는 바람에 아내가 쏟아진 물건을 다른 상자에 옮겨 담을 때였다. 연필에 침을 발라 쓴 듯이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정성스럽게 쓴 것으로 보아 편...
백승학 강원도 태백에 있는 석탄 박물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 석탄 산업이 활발했던 시절 탄부들의 고달팠던 삶의 흔적들이 잘 재현되어 있었다. 그들이 살았던 집, 작업복, 월급이 들어있던 마분지 봉투에는 하나같이 검정 탄가루가 묻어 있었다. 박물관 견학 코스 어디쯤인가에서 커다란 벽화 하나를 보았다. 그림 오른 쪽에는 갱도가 ...
백승학 우리 집 두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제목이 ‘가족’인 영화였는데 가족이 함께 보면 아이들에게 뭔가 유익한 교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은 아빠로서의 숨은 의도에 가족들이 고맙게도 선뜻, 그 뿐 아니라 좋아라며 따라나서 주었다. 그런데 그날, 이정철 감독이 연출한 ‘가족’이라는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우리 ...
백승학 시련을 모르는 채 그저 뛰어 놀던 날들의 뒷산 기슭에는 잎이 지고 있었으나 햇살들은 언제든지 추운 틈새의 끝자락에서 더욱 펄럭이거나 갈참나무 베어져 나간 자리마다 더욱 쌓이다가 밤이 오고 나서도 하얗게 여운으로 남아 어두운 산허리를 길게 물들이곤 하였다 모든 것에 눈부시던 강둑길 옆으로 산 그림자를 밟으며 돌아오던 그 저녁엔 살아갈 날들도 그날처럼 ...
백승학 버려진 소품들과 기한 지난 전단지들이 아직 남아있는 옛골목의 어귀에서 주머니 속을 이리저리 하염없이 뒤적이다가 아직 남은 기억이 만져지는지 그 기억들이 여전히 따뜻한지 먼 하늘을 보는 사람아 아픔이 깊을수록 견뎌야 하는 이유도 깊었으리 비라도 오는 밤이면 젖은 몸 가려주는 어둠이 오히려 고마웠으리 걸어온 저 먼 길을 오늘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서설처...
백승학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문틈 사이로 벼르던 햇살이 들어와함께 갈 데가 있다고 먼저 쓴다나는 옅은 코발트 빛 향기에 이끌려햇살을 따라간다노래하러 간다우암산 후미진 산자락외로운 샘 가에 쭈구려 앉아통곡을 하면서라도 부르고 싶은 노래너무 많아서 차마 부르지도 못하고샘물만 마시다가씨뿌리러 간다나보다 앞서가는 햇살들풀들 우거진 빈들에 와씨를 뿌린다주여...
백승학 그때 마을 앞을 돌아 흐르던 야트막한 개울의 수면 위로 하얗게 몸을 뒤집던 버들치들과 저녁이면 진홍색 석양이 교회당 종탑 사이로 아름다웠으나 정겨운 날에 골짜기 마다 가득하던 드릅나무 그늘의 짙은 향기마저 먼지털 듯 털어주고 어머니가 촘촘한 징검다리를 건너 멀어져간 뒤 곱고 아름답던 것도 모두 내게서 멀어졌지 산그림자 적막하고 바람 마저 불지 않아 ...
백승학 멀리 떠나온 날에 낯선 숙소에서 마른 오징어를 굽고 있었는데 어두워지는 창 밖으로 먼 바다가 보였는지 어느새 검은 눈빛으로 살아난 오징어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오징어는 먼 바다를 바라보고 나는 먼 시절을 바라본다. 푸르른 저녁 하루의 노동이 이미 힘겨웠을 아버지는 연탄불이 지펴진 손수레를 끌고 나가 오징어를 구우셨다. 바다의 빛깔을 담은 오징어...
백승학 엄니, 오래된 겨울에 봄은 잊혀진 것 같고 곱던 꽃들 또한 꿈길에만 핀다 해도 엄니, 눈, 바람, 햇살조차 녹지 않는 꽃그늘처럼 투명한 들녘과 햇살에 채색되는 고운 빛깔의 얼음 그늘들 그 아래서 살다 보면 토닥거리며 타오르는 눈 매운 화로 정겹고 엄니, 우리는 젖은 장작 곁에 둘러 앉아 거친 빵과 오래 익혀 낸 눈물 같은 포도주로 따스한 만찬을 나눌...
백승학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아내린 날에도 여전히 바람이 차던가요? 하늘이 한껏 투명해져 햇살 마저 따뜻한데도 아직 봄이 아니라 하던가요? 하늘이, 그리고 햇살 마저 말예요. 하지만 부디 마음 상하지 마세요 아직 견뎌야할 아픔 남았기에 쉽게 약해지지 말라는 뜻일 테니까요. 바람의 진심을 알고 나면, 지난 겨울 헝클어진 숨결로 하늘 먼 데까지 뒤덮으며 소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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